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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드라이프 갤러리

이름 관리자 date 2018.06.21
제목 2018 위드라이프 효·가족사랑 홍보대상(글짓기 장려상 수상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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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제목 : 할머니와 가습기

 

성하의 폭서가 겨우 지나가나 싶더니 어느새 겨울의 끄트막까지 왔다. 퇴근을 하고 돌아와 늦은 월동준비를 위해 지금은 창고로 쓰다시피 하는 작은방을 정리하던 분주한 손과 마음은 어느 한 물건을 발견하였으매 그 앞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방 한 구석 행가 밑에서 뽀얗게 쌓인 먼지에도 의연히 서있는 그것. 가습기. 정성껏 먼지를 닦아내고 작동을 시켜보니 긴 공백이 무색하리만치 힘차게 허연 수증기를 뿜어낸다. 사출구로부터 힘차게 뱉어지다가 이내 투명하게 사라지는 증기를 보고 있자니 도리 없이 옛 생각에 빠져든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전이다. 해남에 사시던 할머니가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이사 오신 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그로부터 5년 후, 그리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서 거동이 어려워진 할머니가 우리 집에 들어오시게 된 게 1년하고도 2개월 전이다. 아흔하나의 고령이었던 할머니의 육신은 성한 곳 보다는 성치 않은 곳이 더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심했던 것이 피부의 소양감과 밤낮을 가리지 않는 기침이었다. 당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나에게는 아주 곤욕스런 일이었는데 할머니는 무엇이 그리 가려운지 북북북북 소리를 내며 한참이나 몸을 긁다가 그 소리가 귀에 익어갈 만하면 또 케엑켁 하며 연신 밭은기침을 해대는 통에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어렵사리 할머니를 모시고 간 병원에서는 날이 건조해지니 더욱 심해지시는 것 같다는 얘기와 함께 독한 약 몇 첩을 처방해 주었다. 약보다도 피부의 보습과 대기중의 적정습도를 유지하는게 좋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할머니의(그리고 나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가습기를 사기로 했다. 집 근처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만원 에누리를 하여 7만원에 산 가습기를 할머니가 계신 작은 방에 설치하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에게 켜고 끄는 것은 내가 할테니 신경쓰지 말것이며 비싼값을 주고 산것이니 괜히 만지다가 고장내지 말것이며 등등을 큰 소리로 당부했다. 할머니는 내가 가습기 켜는 것을 오도카니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입을 열어 이것이 얼마냐고 물었고 나는 10만원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아침, 여느때와 같이 가습기에 물을 채우고 동작 버튼을 눌렀지만 어찌 된 일인지 가습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전원을 표시하는 액정에는 금이 가 있었고 물통과 몸체도 아귀가 맞지 않아 덜렁거리고 있었다. 바닥에는 행주가 놓여있었고 가습기는 어딘가 어설프게 선반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그제야 전후관계가 파악 된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할머니는 손주가 사준 이 비싼가습기에 먼지가 쌓이는 걸 원치 않았으리라, 그래서 일어서기 불편한 몸으로 선반에서 가습기를 내려 닦으려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트렸고 이 사달이 났으리라. 나는 할머니에게 만지지 말라고 얘기 했잖아요 하며 빽 소리를 질렀고 할머니는 그저 바닥만 보고 계셨다. 그렇게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나니 나도 머쓱해져서 아마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말씀을 드리고 가습기 제조업체에 수리를 문의하며 제품을 맡겼다. 제조업체에서는 단종 된 제품이라 부품수급에 난색을 표했으나 어떻게든 고쳐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났을까 할머니는 집보다는 요양병원에 계시고 싶다며 본인을 입원시켜줄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처음에는 완강히 반대하던 부모님이었으나 곡기를 끊겠다는 할머니의 고집 앞에서는 하릴없이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셨기에 요양원에 들러서 할머니께 간식을 갖다드리거나 하는 잔심부름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내가 요양원에 갈 때마다 할머니는 검버섯 핀 손으로 내 손을 한참이나 잡고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는데 그 때마다 나는 가습기 사건이 떠올라 괜히 빨리 가봐야 한다며 걸음을 재촉해 나서곤 했다.

 

동장군이 지고 봄향기가 물씬 풍기던 어느 날, 그날도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요양원을 찾았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카스테라와 우유를 사들고 방문한 손자를 할머니는 몹시 반기셨지만 어쩐일인지 음식은 입에 대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별안간 옛날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니까 20년도 더 전에 내가 해남에서 할머니와 지낼 때의 일이였다. 당시 부모님의 맞벌이와 가정형편의 어려움으로 나는 할머니댁에 맡겨졌었다. 어느 여름날엔가 나는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할머니를 졸랐고 할머니는 철없는 손주를 위해 노구를 이끌고 길을 나섰던 것이며, 하루에 두 번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생전 처음 택시를 잡아타셨던 일이며 내가 물놀이에 매진하는 동안 뙤약볕에서 손주를 위해 조개껍질을 줍던 일이며.. 나조차 기억이 희미한 일들을 할머니는 어제 일처럼 조용히 읊조리셨다. 나는 괜시리 눈물이 날것 같아 건성으로 응응 대답만 하였다.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는 또 켈록켈록 기침을 하였다. 그리고는 잠깐 일으켜 달라고 하시고 또 내 손을 꼭 잡는 것이었다. 1분쯤 지났을까 할머니는 잠이 온다며 다시 누우셨고 나는 할머니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신발을 갈아신고 요양원 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다급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박연애 어르신 보호자분!’ 그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면 내가 생각한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뛰어나온 그 요양보호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할머니의 임종을 알렸다.

 

할머니의 장례는 3일장으로 치러졌다. 손님이 제법 많았다. 장례가 끝난 후 화장하여 그토록 가고 싶어 하시던 고향 해남 땅에 묻어드렸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며칠 만에 집에 가보니 택배가 와 있었다. 수리가 완료 된 가습기였다. 갑자기 가슴께 어딘가가 찌르르 했다. 뱃속이 쿵쾅쿵쾅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그 때 마침맞게 전화가 울렸다. 요양병원이었는데 할머니의 유품들을 챙겨 가시라는 전화였다. 병원에 두고 온 짐은 이불정도밖에 없었기에 버려달라고 부탁을 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요양원으로 발걸음을 했다. 그곳에서 원장님이 건넨 것은 전혀 뜻밖의 물건이었다. ‘이게 할머니 머리맡에 있더라구요하며 건낸 그것은 돈이었다. 만원짜리 몇장과 또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몇장, 합이 오만구천원. 얼마나 오래 그것을 머리맡에 두고 계셨는지 시커멓게 머릿기름이 배어있었다. 그리고 돈을 펼쳐보자 작은 쪽지에 적어둔 몇글자가 눈에 띄었다. ‘가식기값’. 가식기값...가식기값... 한참을 되뇌어 보다가 순간 눈앞이 번쩍 했다. 아 그렇구나, 할머니는 계속 가습기를 고장낸 것을 마음에 담아두고 계셨던 것이다. 손주가 사준 비싼가습기를, 그래서 병문안 오는 손님들이나 딸들이 주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으고 계셨던 것이다. 행여나 불시에 자기가 떠나게 됐을 때 돈의 용처를 알려주기 위해 쪽지를 적어서 돈 사이에 끼워놓은 것이다. ‘가식기값을 받아들고 나오며 터져나오는 눈물에 나는 정말 엉엉 울었다. 두 눈이 부어 제대로 떠지지도 않을 정도로 울고 난 후에야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돈을 흰 봉투에 담아 셀로판 테이프로 단단히 봉하고 할머니가 쓰시던 서랍장에 고이 넣어 놓았다.

 

가습기의 허연 증기는 할머니의 흰머리를 닮았다. 아마 우리 할머니도 어느 좋은 곳에서 흰머리 곱게 쪽지고 손주를 지켜보고 계시리라. 건강하라고 행복하라고 빌어주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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